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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고개

구룡고개(호계2동)

옛날 방죽말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명당을 찾아 산소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곳(효성T&C)에서 한전 앞을 지나 선일레미콘, 대림아파트에 이르는 고개)은 좌청룡에 해당하는 명당자리라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이웃 마을 사람들까지 와서 불법으로 이곳에 묘를 쓰자 방죽말 사람들이 산의 혈을 끊기 위하여 강남아파트 앞산 중턱을 팠습니다.
그랬더니 그곳에서 피가 솟았다고 합니다. 이곳 주민들은 용의 허리가 끊겨서 나오는 피가 나온 것이라 하여 그 후부터 "구룡고개"라고 불렀습니다.

범고개(박달2동)

박달2동에서 시흥시 목감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합니다.
예전에는 고개가 험하고 으슥하여 강도나 도둑들이 득실거려 도둑놈 고개라고도 불렸습니다. 이 고개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조선조 중엽 범고개 마을의 윤씨성을 가진 한 부자의 시종을 호랑이가 물고 고개를 넘어 간 데서 전래됐다는 설과 고개 중턱에 다리를 구부리고 앉아 고갯길을 보고 있는 호랑이 모양의 바위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초까지만 해도 고갯길이 험하고 나무가 울창해서 호랑이가 살고 있다고 해 고개를 넘어가려면 어른 5명 이상이 모여야 지나갔습니다. 이 고개는 1976년 안양에서 수원, 인천간 도로 포장공사 때 아스팔트가 깔렸으며, 1991년에 박달로 확장공사로 4차선이 되었습니다.

골짜기

수태골(안양5동)

근명여자정보산업고와 동덕아파트 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금실 좋은 한 중년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자녀가 없어 그들의 보금자리인 오두막엔 항상 정다운 이야기와 함께 보글보글 된장찌개가 맛있게 끓어도 어딘지 모르게 허전함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생각다 못한 중년 부부는 골짜기 샘 근처를 찾아와 치성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목욕재계를 하고 옷을 정갈히 입고는 정화수를 떠다 놓고 촛불을 밝히며 산신령님께 온 정성을 다해 백일기도를 드렸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늘도 무심하지 않았던지 백일째가 되던 날 드디어 중년 부부는 꿈에서 산신령님의 계시를 받아 집으로 돌아왔으며 곧 부인에게 태기가 있어 탐스럽고 당당한 사내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 아들은 후에 큰 인물이 되어 나라에 큰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소문은 점점 널리 퍼지면서 자녀가 없는 부인들이 이곳을 찾아와 정성을  들이고 자녀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 골짜기를 "수태골" 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진골(호계3동)

안양교도소 뒤에서 의왕시 오전동 성나자로 마을로 가는 길 부근에 있는 마을입니다. 지금은 부근에 호성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이곳은 춘향전에 나오는 이 도령이 과거를 보러 갈 때 다녔던 곳이라 하여 유명합니다. 조선 중기만 해도 민가가 있었으나 이곳이 한적하고 산기슭이 가라앉아 대낮에도 도둑들이 있어 오가는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살지 못하고 덕고개로 옮겨 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골짜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옵니다.
임진왜란 때 왜장 가등청정이 우리나라에 큰 인물이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땅의 혈을 끊으려고 하였답니다. 그래서 스님으로 변장을 하고 의왕시 오전동 소재 성나자로원 입구에서 옛 과천 가는 구도로에 이르러 큰 미륵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난 후 현 지구표페인트공장 뒤에 있던 말 무덤에서 용마가 나왔는데 그 용마는 이 골짜기에 있던 큰 바위에서 몸부림치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바위

삼귀자바위(석수1동)

삼막사에서 서쪽으로 약 30m에 있는 바위입니다. 백련암 터 서쪽 암벽에 거북 귀(龜)자 세글자가 새겨져 있어 보통 삼귀바위라고 합니다.
이 글씨는 구한말 유불선 및 시,서,화에 능했던 지운영이 삼막사 지주로 있을 때 새긴 것입니다.
지운영은 백련암이란 암자를 지었으나, 1977년 홍수 때 매몰되어 지금은 삼귀바위에 새겨진 거북 귀(龜) 세글자만이 남아있습니다.

들, 벌

강청(江村) 머리들(관양1동)

인덕원사거리 북쪽 지역으로 아주 먼 옛날에는 이곳 일대가 바다였다고 합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7세기경 이곳을 지나가던 어느 고승이 마을 사람들에게 관악산에 절을 지으면 이 일대가 육지로 변할 것이라고 말한 후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마을 사람들이 배를 타고 다니면서 관악산 기슭에 절을 지으니 고승의 예언대로 과연 바닷물이 빠져나가고 육지로 변했습니다.
그때 세운 절이 관악산의 고찰인 불성사라 하며 배를 타고 다니던 그 나루터는 강가의 한쪽 기슭이란 뜻으로 "강촌머리" 또는 "강청머리" 라고 부른답니다.

약수, 우물

부림우물

관양우체국 옆에 있던 우물로 마을 위에 있는 우물이라 하여 보통 "윗 우물" 이라고도 부릅니다.
부림우물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어느 여름, 가뭄이 몹시 심하여 농사는커녕 먹을 물마저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마을에 나쁜 일이 자주 일어나 민심마저 나빠져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이 때 마을에 나이 많은 노인 한분이 관악산 도인을 찾아가 해결책을 물었습니다. 관악산 도인은 마을 우물에 우물고사를 지내면 물이 치솟을 뿐만 아니라 마을의 인심도 진정될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부림우물에 소머리를 놓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박우물과 신작로 우물에는 소의 갈비로 제를 올리자 물이 잘나오고 마을의 나쁜일도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 후부터 해마다 음력 7월1일에는 우물고사를 지내왔으나, 이 지역이 도시화로 집이 많이 생기고 우물의 물도 끊겨 1988년부터는 고사를 지내지 않고 있습니다.

전설

삼막사 은행나무 이야기

삼막사에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이 나무에는 신라 시대에 원효대사가 이 절에 계실 때 땅에 지팡이를 꽂아둔 것이 은행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 은행나무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약 20년 전 삼막사에 고시 공부를 하러 6명이 들어왔는데 어느 날 고시생 중 한 사람이 새벽에 시원한 공기를 쐬러 나왔다가 은행나무를 칭칭 감고 있는 구렁이를 보았습니다. 곧이어 주지 스님과 다른 고시생들도 잠에서 깨어 밖으로 나왔지만, 누구도 그 구렁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후에 구렁이를 본 고시생만이 고시에 합격하였습니다.
합격한 고시생은 자기의 합격이 구렁이 때문이라고 여기고 계속 삼막사에 돈이나 물건을 보냈다고 합니다.

수리산 전설

아주 오랜 옛날, 세상이 처음 생길 때 온 세상이 물에 잠겨 있었다고 합니다. 수리산도 마찬가지였는데 맨 꼭대기에 병아리를 잘 잡아가는 수리(매)가 앉을 공간만이 남아 있어 수리산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때 물에 잠겼던 곳이 있던 조개껍데기와 굴껍데기가 아직 남아있어 지금도 조개껍데기와 굴껍데기가 종종 나온다고 합니다.

찬우물 전설

옛날 가난한 부부가 산등성이에 밭을 갈고, 몇 마지기의 논을 지어 어렵게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몇 해 동안 비가 오지 않아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자, 마지막 남은 곡식으로 정성껏 음식을 마련하여 수리산 꼭대기에 올라가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리고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대의 논,밭 가운데 가장 높은 곳을 찾아 우물을 파 보아라, 물이 나올 것이니라"
하고 신령님은 사라졌습니다. 꿈속의 신령님의 말에 따라 부부는 언덕배기 밭을 파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말대로 맑은 샘물이 솟았습니다. 부부는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하늘이 내려주신 복이라 생각하고 이 우물을 보살피며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이 물은 마르지 않아 농사를 거르는 일이 없게 되었고, 부부는 인근에 소문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찬우물은 맛이 좋고 물이 마르지 않아 많은 사람이 이곳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망해암 전설

신라 원효대사가 절을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망해암" 은 안양시가지는 물론 멀리 서해바다까지도 한눈에 바라다 볼 수 있습니다.
조선 세종임금 때 세금으로 받은 남쪽 지방의 곡물을 뱃길을 따라 한양으로 운반하였습니다. 인천 앞바다 팔미도 부근을 지날 무렵 몹시 심한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힐 지경에 이르렀답니다. 뱃사람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헤매고 있을 때 뱃머리에 한 스님이 나타나 "그대들은 너무 당황 말고, 내 말을 들어라" 하며 뱃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인도하여 무사히 위기를 넘겼습니다.
풍랑이 잠잠해지자 한 뱃사람이 스님에게 어느 절에 계시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스님은 관악산 망해암에 있다고 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뱃사람 일행이 한강까지 무사히 닿은 뒤 생명의 은인인 스님을 찾아 망해암에 가보았지만 그런 스님은 계시지 않았으며, 법당 안에 그 용모와 모습이 흡사한 부처님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처님이 구해 주신 것이라 여기고 임금님께 아뢰었습니다. 이를 들은 임금님은 매년 망해암에 한 섬씩의 공양미를 불전에 올리도록 분부하셨습니다. 이 공양미는 400년간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안양의 민요

민요란 민속악의 한 종류로 자연적으로 생겨나 오랫동안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소박한 노래를 말합니다.
우리 고장은 중부지방 경기권으로 민요의 특성도 경기지방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고장에 전해지는 민요로는 농요와 노동요가 주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농요에는 주로 농사와 관련된 모심는 소리, 논매는 소리, 방아타령 등이 있고 서울과 경계인 석수동에는 석산이 있어서 오랫동안 돌 캐는 작업이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자연스레 채석장 노동요가 불려 왔습니다.

  • 산이야, 산이야, 산이야, 산이야, 아산도 산이지. 산지 조종은 곤륜이요, 수지 조종은 황하수라
  • 군방매 “예~이” 지경 한번 잘 다져 봅시다. 고추상투를 흔들어 가며 지경돌에 발 다치리라 번쩍 들어서 쾅쾅 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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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19.07.24